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생명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세계는 다양한 사물과 존재들의 관계망에 물질, 에너지, 정보가 순환하면서 생명의 질서를 만들어갑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세계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동(動)과 역(易)이 생명의 본성인 것입니다.


노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 굳은 것은 자고로 죽음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역동성, 움직임, 변화란 생명의 과정은 관계 사이의 물질, 에너지, 정보의 소통과 순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순환과 소통이 끊기면 그 단위 생명체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기(氣)가 막히면 체하고 더 심해지면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마찬가지로 피의 순환, 공기의 소통(호흡)이 막히면 사람이 죽게 됩니다.
생명의 세계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사이, 단위 생명체 내부와 외부, 단위 생명체 내부의 각 구성단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물질, 에너지, 정보의 순환과 소통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사람이 호흡을 하고 밥을 먹고 활동하고 배설하는 과정, 서로 간에 또는 다른 생명체와 의사소통 하는 과정 모두가 이런 생명 세계의 움직임인 것입니다.

이 생명세계의 기본적인 원리는 또 하나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나 조직도 물질, 에너지, 정보가 한 곳에 막혀 있으면 그 사회, 조직은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또한 물질, 에너지, 정보가 순환․소통되지 않고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흘러도 그 사회, 조직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물질, 에너지, 정보의 되먹임(feedback) 없이는 생명체가 오랫동안 살아갈 수 없습니다. 특히 고등 생물이나 체계가 복잡한 조직체에서 되먹임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은 소통과 동의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학연, 지연, 혈연을 기반으로 밀실에서 정보를 소유하고 독점하는 우리 사회의 정치과정을 비판한 박승관 교수가 드러난 얼굴과 보이지 않는 손에서 말하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그 사회의 건강함, 생명력을 진단할 수 있는 척도인 셈입니다. 정치학자 김홍우 교수는 ‘바른 정치’란 소통을 말한다고까지 강조합니다.

생명론에서도 소통이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생태적 감수성, 생명 세계에 대한 깨달음, 삶에 대한 각성은 결국 무수한 사물과 존재들의 관계망 속에서 소통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섭니다. 서구 근대의 소통이론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만을 강조하고 있다면, 서구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생명론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 뭇사물과 뭇생명들 사이의 소통이야말로 바로 역동적인 생명세계의 전제조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관계의 그물의 역동적이며 쉴 새 없는 출렁거림과 그 그물의 출렁거림 가운데 이따금 반짝이는(깨달음과 각성의 순간) 그물코가 만들어 가는 황홀한 아름다움이 생명 세계인 것입니다.

김홍우, 「정치란 무엇인가 - 소유에서 소통으로」, [삶의 정치-통치에서 자치로」, 대화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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