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8일 금요일

[논단] 진정한 소통의 열쇠

우리는 소통의 부재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소통의 도구들을 빠른 속도로 생산해 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소통의 부재와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소통은 기술이나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통하는 사람이 가진 윤리와 철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세 유명한 철학자이며 윤리학자인 마틴 부버(M. Buber)는 세가지 유형의 소통이 있다고 말한다. '독백', '기술적 대화' 그리고 '진정한 대화'이다.



독백이란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대화를 말한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답변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서 하는 대화이다. 자신은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을 대화로 위장된 독백 (모놀로그)이다. 예를들어 십대가 된 자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말을 하면서 자신은 자녀와 대화가 잘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이다. 회사에서 부하 직원들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목표달성을 강요하는 훈시를 쏟아 붓고는 오늘 회의가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교인들의 상황이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메세지만 독백처럼 말하고 난후 스스로 설교를 잘했다고 착각하는 경우이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미성숙한 소통의 자세이다.

부버가 말하는 두번째 유형은 기술적 대화이다. 이것은 사실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하는 대화이다. 상대방은 내가 메세지를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혼자서 이야기하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의 형식을 띄고 있다. 현란한 어휘를 구사하고 논리정연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대화 상대방은 어디까지나 피동적인 객체일 뿐이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고려하거나 인정하지 못한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통 양식이다.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는 있겠지만 진정한 만남이나 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마지막 유형이 진정한 대화이다. 이것은 인격적 만남이 일어나는 대화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일어나는 소통이다. 서로 인격적 대화를 통해 관계가 형성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진정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 상대방의 마음과 소통되는 것이다. 진정한 대화는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언어 기술이나 언변에 의지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영혼없는 대화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대화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침묵으로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눈빛 만으로도 통할 수 있는 대화이다.

이런 마틴 부버의 소통관은 동양의 소통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부버는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대화의 기술이나 논리를 강조하는 서양의 소통관에 비해 동양에서는 언어의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소통을 추구해 왔다. 마음만 통한다면 반드시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침묵 가운데서도 진정한 소통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주로 어떤 유형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 우리는 혼자서 떠들어대는 일방적인 독백이나 현란한 언어의 기술을 사용해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소통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많은 말이나 사람들이 듣기 좋은 멋진 기도문 보다 우리의 진정한 마음이 담긴 몇마디 기도 혹은 침묵의 기도에 더 귀 기울이실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시대이다.

천영철 목사
WCC 아시아지역 커뮤니케이션 담당관

[기독공보 2014년 06월 3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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